제목 불교탐구 - 제1부 사원과 불자의식
작성자 마이템플 등록일 08-03-15 12:03 조회수 1,198
 
 
제 1 부.   사원과 불자의식
 
제 1 장.   사찰예절
 
사찰은 거룩한 부처님을 모신 신성하고 장엄한 도량이며, 우리 마음에 묻어있는 더러운 때를 씻어 깨끗이 하는 도량이다.  그러므로 절에서 지켜야 할 예법도 바르게 알아서 행해야 될 뿐만 아니라 마음자세도 단속하여 올바른 신행생활을 해야한다. 
 
*도량이란 모든 부처님께서 바른 깨달음을 얻으신 장소를 말하는데, 보통은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장소를 일컫는다.
 
1. 참배의 대상과 마음가짐
 
불자가 사찰을 찾아 참배하는 것은 신행 가운데서도 가장 기본이 되며 으뜸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는 신행생활이 우리에게 단순히 일상생활에서 쌓인 피로를 풀고, 새 정신과 새 힘을 얻어 다시 생활에 임할 수 있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진리의 세계를 찾아 들어서는 것이며, 신성한 분께 자신의 오만과 아집을  꺾는 일이며, 참 인간의 길을 걷기 위한 첫 노력의 표현인 것이다.
            
우리의 참배 대상은 당연히 부처님이시다. 여기서 말하는 부처님은 과거 2천 5백여년전의 석존만이 아니고 경전에 나오는 모든 부처님들을 포함한다. 부처님이라야 우리의 예배를 받을 자격이 있고 우리에게 공덕을 베풀어줄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아무리 많아도 모두 하나로 통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결국 모두가 법신(法身) 부처님의 분신(分身)으로서, 본래 법신불(法身佛)이 무수한 불성(佛性)으로 분신하여 많은 부처님과 중생 그리고 우주법계의 본성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연유로 부처님과 중생이 하나이며, 따라서 예배는 자기속에 있는 부처님에게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자신은 이미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지를 부여받았다. 그렇지만 아직 자신의 불성(佛性)을 깨달은 것이 아니므로 사찰법당에서 불상을 참배하여, 이미 불성을 깨달으시고 우리에게 불성이 있다고 모범을 보이신 부처님을 우러러 예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상을 참배하는 것은 위대한 스승 앞에 예의를 표시하는 것이며, 불상을 보면서 자기에게도  저러한 불성(佛性)이 있음을 보고 자성(自性)을 확인하는 것이다.
 
자성(自性)이란 우리 자신의 본성품, 즉 불성(佛性)을 말한다. 부처님의 심성(心性)인 불성(佛性)은 마음의 깨달음으로 아는 것이다. 마음이란 정신의 중심체이다. 「원각경」을 보면 몸은 눈, 귀, 코, 혀, 몸, 뜻의 육근(六根)과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사대(四大)가 안팎으로 합하여 이루어진 것인데, 그 안에 기운이 허망하게 모여있는 것을 마음이라고 했다.
 
이때의 기운이란 6식(識)을 가리키는데, 6식(識)의 작용이 한 군데로 모이고 쌓여서 종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마음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6식(識)은 눈, 귀, 코, 혀, 몸, 뜻을 가리키는 6근(根)의 기초의식을 말하는데, 이 6식(識)이 마음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6식이 활동할 때에만 자리를 잡을 수 있고, 6식이 활동을 멈추면 마음의 자리도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망자(亡者)에게서의 마음은 떠돌이 신세인 것이다.
 
6식보다 더 깊고 깊은 우리 마음의 밑바탕,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은 부처님의 마음같이 깨끗하다. 그래서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부처님이 계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불성(佛性)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이 땅에 있을 때에 무아(無我)의 진리를 깨닫고 자성(自性)을 보는 첫 걸음마인 예배수행부터 착실히 해야 하는 것이다.
 
즐겨찾는 명찰(名刹)과는 별도로, 우리가 소속된 사찰에 정기법회가 있으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결석하지 않는다는 마음가짐도 필요하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지니면 자연히 만사가 순조롭게 변하여 법회에 참석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피를 가족과 이웃에게도 전하여 함께 법회로 인도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부처님께 올릴 향, 초, 꽃, 과일, 곡식, 보시 등의 공양물은 깨끗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준비한다. 향은 명예와 돈과 권력으로 부터의 자유와 해탈을 상징하며 또한 희생, 화합 등도 상징한다. 초(또는 등)는 어둠을 밝히는 지혜를 상징하며 또한 희생과 광명이다. 수행을 상징하는 꽃을 바친 이는 내세에 미인으로 태어난다. 깨달음을 상징하는 과일, 법문을 음미하며 메마른 삶에 청량함을 상징하는 물 한잔의 공양, 차 한잔의 공양도 그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쌀은 기쁨이다. 이밖에도 여러 형태의 공양이 가능하다.
 
 
2. 사찰 출입
 
사찰(절)은 마음의 번뇌를 맑게 하여 지혜를 닦는 수행장으로서 기도하고 참회하는 귀의처이다.  따라서 정성스럽게 도량을 보호해야 하고, 출입하거나 참배할 때에는 마음과 몸을 경건하고 엄숙하게 하여야 한다. 사찰을 찾을때는 단정한 옷차림을 해야 하며 지나친 단장(화장,장신구,의복)은 피하고 차는 지정된 주차장에 주차시키고 출입해야 한다.
 
도량에 들어서거나 나올 때는 입구에서 법당을 향해 합장 반배를 하고 곧장 큰법당의 부처님께 예배하러 가야 한다. 일반적으로 대웅전(大雄殿)은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왼쪽에 문수보살 오른쪽에 보현보살을 모신 곳이다. 석가모니불은 참 지혜와 복덕과 일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큰 원력을 갖추시고 중생으로 하여금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한 인생을 살도록 하기 위해 계시며, 문수보살은 지혜를 맡고, 보현보살은 덕행을 맡아 석가모니불의 중생제도를 돕는다.
 
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참배하되, 법당에 들어설때는 가운데 복판문(어간문)을 피하여 좌, 우 옆문을 이용한다.  어간문은 부처님을 시봉하는 조실(祖室)스님, 주지스님, 법사스님들이 이용하시는 곳이므로, 일반 신도는 사용하지 않는다. 법당문을 열 때에는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되, 왼쪽문으로 들어설 때는 왼발부터 들여놓고, 오른쪽 문으로 들어설 때는 오른발 먼저 들여놓는다. (나올때도 이와 같다.) 부처님을 앞으로 마주하는 자세가 되도록 첫발을 딛고 들어서야 한다. 
 
 
3. 법당 예절
 
(1) 참배 

일단 법당안에 들어섰으면 먼저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고 허리를 60°정도 굽히며 반배한다.  공양물이 있으면 그것을 들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단정한 걸음걸이로 뒤꿈치를 들고 불단 앞까지 나아간다. 법회중일 때나 의식이 진행될 때는 다른 사람의 머리맡으로 다니거나 방해되지 않도록 살펴가며 나아가거나 잠시 기다린다.
 
불단 앞에 서서는 가볍게 부처님을 향해 합장 반배하고, 앞으로 다가서서 공양물을 올려놓고 나서 촛불을 피우고, 향을 사루어 꽂은 다음, 한걸음 뒤로 물러나 합장 반배하고, 뒷걸음으로 몇 걸음 물러난 뒤 몸을 돌려 적당한 자리로 돌아와서 예배한다. 이때 스님이나 웃어른과 나란히 서지말고 약간 뒤에 떨어져서 예배하되 부처님의 정면에 서지말고 약간 비켜서며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한다.
 
향은 한 개비만 피우면 되고 다른 사람이 꽂아 놓은 것이 있거나 촛불이 켜져 있으며 자기가 가져온 것은 그대로 불단에 올려놓으면 된다. 다른 사람이 켜놓은 것을 끄거나 뽑아치우지 않도록 한다. 초를 꽂는 법은 먼저 오른손으로  초를 잡고 왼손으로 같이 잡아 반듯하게 꽂고 불을 켠다. 향은 촛불에 불을 붙혀 향로 가운데 반듯하게 꽂은 뒤 다시 합장하고 물러나서 반배하고 몇걸음 물러나 3배 올린다. 보시(불전)봉투는 주소와 이름을 깨끗이 써서 불전함에 펴서 잘 넣고 자리로 돌아와 예배한다. 다기물(茶器物)을 올릴때도 맑은 물을 다기(茶器) 차관에 떠 와서 오른손으로 차관 잡고 왼손으로 받들어 다기에 넘치지 않게 따른다.

이제 자리가 정해졌으면 오체투지(五體投地)하는 자세로 큰절 3배를 올린다. 오체투지의 예법은 불자들이 삼보께 올리는 절로서, 자신을 낮추고 상대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경건한 동작이다. 두 팔꿈치, 두무릎, 이마를 바닥에 대고 가장 낮은 자세로 손바닥을 위로 하여 부처님을 받드는 큰절법이다.
 
자리는 먼저 온 사람부터 앞으로 당겨 서고 조금이라도 양보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자리가 좁을때는 자기 무릎 위에 경전을 올려놓고 읽으며 경전을 밟거나 넘거나 하면 안 되며, 경전 위에 다른 물건을 올려놓아도 안 된다. 경전을 소중히 여기고 공경치 아니하면 박복해지고 지혜가 없어진다. 법당 안에서는 앉을 자리를 서로 다투거나 큰소리로 말하지 말고 웃거나 장난을 하지 않으며 가벼운 눈짓이나 행동으로 의사를 표시하며 서로의 인사는 목례(눈인사)로 한다. 참배가 끝나면 반드시 촛불을 끄고 다기를 비운 다음 나와야 하는데, 촛불은 입으로 불어서 끄는 것이 아니고 준비된 도구나 손바람으로 끈다. 큰법당 참배가 끝나면 각단에 예불한다.
 
(2) 불공기도
 
기도는 다겁생(多劫生)*으로 지어온 죄업을 맑히고 현생에 길들여진 삿된 가치관과 습관을 풀어 가는 거룩한 일으므로 경건하고 오직 부처님을 향하는 일념으로 모든 업장*이 소멸되고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고 마침내 성불한다는 확신으로 임한다. 이처럼 기도는 의심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이 지정의(知情意)를 완전히 내던졌을 때 가피력이 온다.
 
기도에도 마장*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간절한 기도를 통해 참회하고, 앞으로 올바르게 살려는 자기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며, 우주법계에 가득찬 법신불과 하나 될 수 있다. 그리하면 불자의 마음이 법신의 부처님과 하나되어 만사가 뜻과 같이 순조롭게 되고, 그 감사의 마음이 이웃을 향한 봉사행이 되어 삶의 보람을 얻게 되는 것이다. 
 
기도하는 법으로, 법회 중이면 목탁을 치시는 스님을 따라서 하면되고, 독경할때는 편안한 자세로 반듯하게 앉아 합장하고 목탁에 맞추어 독경하되 남이 독경할 때 절을 하면 안된다. 정근할때는 같이 서서 합장하고 일념으로 함께 염불한다.  스님께서 축원하실 때 계속 절을 하면 된다. 우리가 하는 염불(念佛)의 의미는 부처님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염불은 큰소리로 독송함이 좋다. 염불을 하면 지옥, 아귀, 축생의 고통이 쉬게 되고 부처님이 기뻐하시며 삼매가 뚜렷해지니 끝내 극락 세계에 왕생한다. 이를 고청염불십종공덕(高聽念佛十種功德)이라한다.
 
이밖에도 기도의 종류는 독경기도(진언과 경을 정성껏 읽으며 하는 기도), 정근기도(부처님 명호를 일심으로 부르며 하는 기도), 사경기도(경을 쓰면서 하는 기도로서 한번 절하고 한 글자 쓴다), 시식기도(구병기도, 49재 등을 통해 영구적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기도), 보살행기도(공양)*, 예불 등 삶의 모든 일을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 자체 등이 있다.
 
* 겁(劫)이란 어떤 단위로도 계산할 수 없는 무한한 시간 단위이다. 몇 가지 정의 중에 하나는 ‘둘레가 40리나 되는 거대한 바위 주위를 천인이 1백년마다 한번씩 돌아 엷은 옷을 스쳐서 마침내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지더라도 한 겁이 다하지 않는 기간’이다.
 
* 업장이란 악업에 의해서 생겨난 장애이며, 업이란 일반적으로 몸, 입, 뜻으로 짓는 동작, 말, 생각하는 것들의  세력을 말한다. 원어로 ‘카르마’이다.
 
* 마장이란 방해자, 악자(惡者), 살자(殺者) 등이다. 일반적으로 악마라고하며 사람들 육신의 생명을 빼앗아가고 지혜를 끊으며 몸과 마음을 요란케 하고 착한 일을 방해하는 악귀신을 말한다.
 
* 공양이란 공급봉양의 준말이다.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와 부모, 스승, 망자(亡者), 국가 등에 대하여 몸과 마음을 다해 받드는 것이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은 마지(摩旨)라고 한다.
 
(3) 법회
 
시간 전에 도착하여 부처님께 삼배한 후 법회 순서에 따라 한다. 법회란 부처님의 정법을 배워 이해하고 실천하여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므로 항상 경건한 마음가짐과 돈독한 신심으로 법회에 임하며, 법회가 시작되면 모든 사적인 언행을 삼가고 법회에 일심동참하며, 끝까지 법회를 다 마치고 나간다.
 
설법을 들을 때는 귀담아 듣고 마음을 반조하며 설법 내용에 대해 아는 바가 있다 하더라도 가벼이 생각지 말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천번 만번 들어도 들을 때마다 새롭고 감사한 마음으로 듣도록 하여 생활의 지표로 삼고, 실천토록 애쓴다.
 
 
4. 절하는 법과 의미

절은 존경의 표시로, 절하는 것은 본래 거만함을 꺾고 삼보(三寶)에 귀의하고 순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며 자기 공로를 잊음으로써 한량없는 발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절을 할 때의 마음자세는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자비로우신 부처님께 최상의 존경과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특히 3배를 드림은 몸(身), 입(口), 뜻(意)으로 짓는 세 가지 업(業)을 참회하고 삼보께 귀의하며 참 진리를 배우고자 자기를 굽히는 일이다. 우리가 108배, 1천배, 3천배를 하는 순간마다 업력은 소멸되고 무아(無我)의 경지가 나타나 소원성취를 돕는다.    
        
(1) 합장법
 
합장은 본래 부처님의 나라 인도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께 예배하는 인사법으로서,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고 한데 모아 너와 내가 하나 된다는 의미를 표하는 것이다.  합장할때는 오직 부처님께 향하는 일념으로 정성을 다해, 두 손을 앞으로 올려 가슴 앞에서 맞닿게 모으고 두 손바닥과 열 손가락이 밀착되도록 해서 가운데 공간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 가슴과 합장한 손 사이에는 손바닥 하나가 드나들 만큼 약간 뗀다. 이때 두 손은 약간 안으로 당기는 듯 세워서 자기 턱을 향하도록 하며, 눕거나 처지지 않도록 해야한다.
  
(2) 반배법
 
합장한 자세에서 그대로 자연스럽게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여 45°정도로 공손하게 한다. 이를 달리 합장예의라고도 한다.
 
(3) 삼배법
 
3배 중의 1배는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뜻이며, 2배는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 3배는 거룩한 스님네께 귀의한다는 의미이다. 3배하는 순서는 합장하고 선 자세에서 반배를 한번 하고 나서, 합장한 채 상체를 약간 앞으로 굽힌 듯 해서 두 무릎을 가지런히 바닥에 댄 다음 두 손을 무릎 앞머리가 닿을 정도 되는 위치에 어깨넓이 정도로 짚음과 동시에 왼발등을 오른발 위에 겹쳐 얹는다. 엉덩이를 발뒷꿈치에 밀착시키며 이마를 바닥에 대며 양손은 펼쳐서 손바닥이 위로 향하도록 해서 귀 있는 곳까지 올려서 접족례(발을 떠받드는 형상)를 한다. 이때 손가락 사이를 벌리거나 구부리지 않고 반듯하게  편다.
 
일어설 때는 손바닥을 뒤집어 일어서면서 반대 순서로 세 번째 절하려고 엎드리고 귀까지 올려던 손을 뒤집어서 손바닥이 바닥에 닿게 짚었다가 머를 약간 들면서 엎드린 채 합장한 자세로 한 번 절을 하고 (유원 반배 또는 고두례) 일어선다.  마지막으로 완전히 일어서서 선 채로 합장 반배한다. 
 
(4) 고두배
 
고두례 또는 고두배라고 하는데, 이는 3배, 108배, 1천배, 3천배 등의 모든 절을 마칠 때 마지막 마무리로 하는 절이다. 자세히 설명하면, 예컨대 3배의 마지막 세번째에 엎드려 절하고 손을 들어 올리는 것까지는 같은데, 그 다음 들어올린 손을 거두어서 이미 밑에서 엎드린 채 합장한다. 이때 합장한 새끼손가락이 바닥에 닿을 정도면 된다. 이렇게 하는 예법을 고두배라고 하는 것이다. 고두배가 끝났으면 다시 한번 더 두 손바닥을 펴서 귀밑 부근에서 받들어 올린다.
 
그 다음 올린 손바닥을 내려 바닥에 대고 이마를 들어올리면서 발 앞꿈치를 세우고 동시에 왼손을 들어 가슴에 댄다. 그리고 오른손을 들어 가슴에서 왼손과 합장하고 무릎을 꿇은 자세는 처음과 같다. 바닥을 짚든지 합장하고 일어나 반배를  하면 마지막 예법이 끝난다.
 
(5) 두 손을 받드는 이유
 
절하면서 엎드린 채 두 손을 들어올리는 것은 부처님의 지혜와 복덕을 상징하는 두발을 받들어 올리는 것과 같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인격자로서 지혜와 복덕을 모두 갖춘 분이시므로 우리 중생은 두 손으로 존중의 뜻을 표하는 것이다.
 
재승덕박(才勝德薄)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이 재주와 복덕을 둘다 갖추기란 쉽지 않다. 재주만 있다고 세상을 잘 살아가는게 아니라 많은 세월동안 선업(善業)을 닦아 지은 복이 있어야 매사 순순히 풀린다. 우리는 부처님을 모범으로 해서 부지런히 지혜를 갈고 닦고, 세상에 많은 선한 일을 하여 복덕을 성취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심오한 의미를 알고 참배수행을 꺼리지 않고 항상 실천해야 한다.
 
법당 앞을 지날때는 항상 합장 반배하며, 걸어다닐 때 신발을 끌거나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용히 다닌다. 마루에 걸터앉거나 불단을 등지고 앉거나 서지 말며 신발은 언제나 가지런히 벗어 놓는다.  사회적인 화제로 도량을 시끄럽게 하여 수행하는 스님들을 방해하면 안되며, 스님을 만나게 되면 먼저 합장 반배하며 아는 스님만 가려서 인사하면 못쓴다.
 
스님은 삼보 가운데 하나인 승보(僧寶)이며 중생의 복전이 되므로 공경하는 마음으로 귀의하며, 스님 개인 일이나  단점에 대해 말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스님께 상담할 것이 있으면 사전 연락을 취해 만나서 3배 드리고, 본인이 누구인가 밝히고 용건만 상담한다.
 
경내에 떨어진 오물이나 쓰레기 등은 보는 대로 줍되, 자기가 버린 것이 아니더라도 치우며, 사찰에 있는 모든 물건은 우리 모두의 공용물이기 때문에 항상 아끼고 제자리에 정돈하여 훼손되지 않게 보호해야 하며, 특히 법구 (종, 북, 목탁, 요령)등은 함부로 만지지 말아야 한다.
 
절에서는 오전 정진이 끝나고 큰법당에서 여섯망치의 마지종이 울리면서 9~11시 사이에 사시(巳時) 예불 또는 사시 마지(摩旨)가 거행 된 후에 재식(齋食:점심공양)이 시작된다. 공양을 하게 되면 다같이 평등하게 나눠 먹어야 하고 남기거나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며, 설거지를 함께 돕는다.
 
 
제 2 장.    사찰의 구성
 
1. 사찰건축물
 
(1) 법당 

① 대웅전 (大雄殿)
 
석존을 모신 큰 법당을 대웅전이라 한다. 부처님을 대웅(大雄) 즉 ‘위대한 영웅’으로 표현한 것이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고도 하며, 항상 사찰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금당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왼쪽에 문수보살, 오른쪽에 보현보살을 모신다. 문수보살은 문수사리라고도 하며 지혜를 상징한다. 오른쪽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지닌 경우가 많다. 대좌는 연화대나 청사자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의 명호를 듣거나 청념하면 4중죄(重罪)가 없어진다고 한다.
 
보현보살은 대행원(실천)을 상징한다. 보현보살은 연화대 위에서 합장한 보습으로 나타나며, 손에는 연꽃을 쥐고 코끼리를 타고 있는 수가 많다.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실천이 새의 양쪽 날개와 두 개의 수레바퀴처럼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보현보살은 문수보살과 함께 일체보살의 으뜸이 되어 부처님의 중생구제 일을 돕는다. 특히 중생의 목숨을 길게 하는 덕을 가졌으므로 연명(延命)보살이라고도 한다.
 
② 비로전 (毘盧殿)
 
맑고 깨끗한 법신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으로 혹은 대적광전, 대광명전이라 하여 대웅전 대신 큰법당으로 하기도 한다. 법신이라는 것은 우주 만물의 근본이고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소리나 형체나 생(生)이나 멸(滅)도 나타나지 않는 진리의 본체이신데, 이것을 인격화시킨 것이 청정법신 비로자 나불이다. 모든 부처님은 비로자나 부처님으로부터 존재하시므로 이 분의 형상을 모실 때는 항상 지권인(智拳印)을 짓는데, 이른 오른손의 부처님의 세계가 왼손의 중생세계를 감싸고 있음을 뜻한다. 즉, 부처님과 중생은 하나이며 법신본유(法身本有)라 하여 법신이 일체 중생의 마음 가운데 있음을 상징한 것이다.
 
③ 극락전 (極樂殿)
 
극락세계의 부처님이신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으로 미타전(彌陀殿) 또는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도 하며 큰법당으로 쓰기도 한다.  극락전에는 가운데 아미타불을 모시고 좌우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신다. 그리고 부처님 뒤쪽으로 아름다운 극락세계를 보여주는 불화가 있다. 극락세계에 사람이 나게되면 그곳에서도 좋은 세계가 있고 더 좋은 세계가 있어서 9층의 세계로 나누어져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극락세계 9품 연대라 한다.
 
아미타불은 영원한 수명과 무량한 광명을 보장해주시며,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주재하면서 일념으로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사람을 아름답고 편안한 극락세계로 맞아가는 부처님이시다.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에 나타난 아미타불의 역사는 오랜 옛적 세자재왕불의 감화를 받은 법장(法藏)이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극락정토를 건설하고 있으며 이 부처님이 바로 10겁전에 성불한 아미타불이라고 한다.
 
한국 화엄종에서는 아미타불을 주불(主佛)로 모시고 있고, 아미타불의 후신이 관세음보살이라고 한다. 관세음보살은 자비심으로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하시고, 대세지보살은 지혜광명으로 지옥, 아귀, 축생, 중생을 제도하시는 분이시다. 좌우의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아미타불의 자비와 지혜를 가리키는데, 아미타불의 자비와 지혜 중에서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대세지보살은 지혜를 수반한 용기를 베푸신다. 대세지보살은 한번 발을 디디면 삼천세계와 마군의 집이 진동하므로 붙혀진  이름이다. 대세지보살은 관세음보살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다만 머리에 쓰고 있는 화관에 부모님의 유골을 담은 보배병을 이고 있다. 그 이유는 세상의 모든 부모님을 마치 내 부모인양 공경하고 모시겠다는 소망 때문이다. 우리도 대세지보살처럼 이웃을 내 부모처럼 공경해야 한다. 
 
* 중생이란 육도에 윤회하며 살아가는 무리이다.
 
④ 관음전 (觀音殿)
 
대자대비의 상징인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으로, 강원도 낙산사처럼 큰 법당을 대신할 때는 관음전이라고 이름하지 않고 원통전(圓通殿)이라고 한다. 관세음보살은 세상의 음성을 관하시고 발고여락(拔苦與樂)하는 자비의 화신이며 현세의 구세자이시다. 법화경 보문품에 의하면 갖가지 고뇌를 받는 무량백천만억의 중생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듣고 일심으로 칭명하면 관세음보살은 즉시 그 음성을 관하여 구제한다고 기록되어있다.
 
왼손에는 봉우리 상태의 연꽃을 들고 오른손에는 불사의 감로수병*을 들고 있다. 연꽃의 봉우리는 중생들 각자의 불성(佛性)을 상징하며 감로수병에는 법수의 향기가 가득해 마구니의 구름을 세탁하고 서기(瑞氣)를 일으키며 열과 번뇌*를 소제하여 청량을 준다고 한다. 관세음보살의 머리에 쓴 보관은 항상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는데, 그 연유는 아미타불이 지니고 있는 자비의 덕성을 이어받고 있음을 상징한 것이다. 
 
관세음보살은 14가지 무외력과 자비희사(慈悲喜捨)라는 네가지 무량심(無量心)을 성취했다. 14가지 무외력(無畏力)이란 중생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 불 속의 중생이 타지 않게 하는 힘, 물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는 힘, 귀신의 해를 입지 않게 하는 힘, 살해를 당하게 되어도 칼이 토막토막 부서지게 하는 힘, 어두운 성품을 없게 하여 악귀가 보지 못하게 하는 힘, 중생에게 쇠고랑이나 오랏줄 등이 몸에 붙지 않게 하는 힘, 험한 길을 가더라도 겁탈당하지 않게 막는 힘, 음욕을 여의게 하는 힘, 성내는 마음을 없애는 힘, 어리석음을 영원히 없애는 힘, 지혜총명한 아들을 낳게 하는 힘, 단정한 딸을 낳게 하는 힘,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한번 부르는 것이 62억 항하사 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것과 같은 복덕이 되게 하는 힘 등이다.

* 감로수는 천신들의 음료 또는 하늘에서 내리는 단이슬, 도리천의 감미로운 영액이다. 고뇌를 없애주고 장수하게 하며, 부처님의 설법을 비유하기도 한다.

* 번뇌는 중생의 마음이나 몸을 번거롭게 괴롭히고 어지럽게 하며 더럽히는 작용을 하는 것을 말한다. 108번뇌의 108은 6근(根: 눈, 귀, 코, 혀, 몸, 뜻) x 6경(境: 색, 성, 향, 미, 촉, 법) x 3세(世: 과거, 현재, 미래) = 108에서 산출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중생의 감정은 108속에 포함된다.

⑤ 지장전 (地藏殿)
 
명부전(冥府殿)이라고도 하며 대원력의 상징인 지장보살을 중앙에만 모시기도 하나 대부분 우리나라 사찰은 명부의 시왕을 좌우로 모시기 때문에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은 석존께서 입멸하신 뒤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천상에서 지옥까지 일체 중생을 제도하시는 분인데 특히 지옥중생을 가엾이 여겨 지옥문전에서 항상 눈물을 흘리시면서 중생을 제도하신다. 따라서 지장보살은 육도윤회의 끝에서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해주는 보살이다.
 
머리를 깍은 민머리를 하시거나 두건을 쓰시고 가사를 입고 연꽃을 들고 오른손에 보배구슬을 들기도 하며, 석장(錫杖)을 짚은 모습과 종자를 안은 분도 있다. 지장보살은 대원본존(大願本尊)으로서 성불하지 못한 중생이 한 중생이라도 있으면 성불하지 않겠다 함이 이 보살의 서원이다.
 
지장보살의 좌우보처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있으며, 그 옆으로 시왕(十王)이 자리잡고 있다. 시왕은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이승의 죄를 판결하는 10대 지옥의 대왕들이다. 우리가 잘 아는 염라대왕은 발설(發舌)지옥을 관장하며 영가가 5주째 만나는 대왕이다. 그는 양손으로 수염을 다듬고 머리에 명부책을 이고 있다. 
 
⑥ 미륵전 (彌勒殿)
 
용화전(龍華殿)이라고도 하며 앞으로 오실 미륵불을 모신 법당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미륵불은 대부분 옥외에 크게 조성하여 모시는 것이 대부분의 모습이다. 미륵불은 석존께서 열반에 드신 후 56억 7천만년이 지난 후 사바세계*에 강림하시어 중생을 제도하실 분이며 불상은 용화전(미륵전)에 모셔져있다.
 
미륵불은 사랑과 우정을 나타내는 말로, 한번 약속한 맹서는 반드시 지킨다는 의미가 포함되어있다. 미륵 부처님은 현재 도솔천에 계신다. 도솔천에서 이 세상에 하생하여 용화수 아래서 성불할 때 세상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고 재난은 없으며 서로 공경하여 평화롭게 살아가게 되며, 석존이 제도하지 못한 중생들을 3회에 걸쳐서 용화법화에서 제도하는데 오늘 불교를 믿는 우리들은 여기 이 작은 인연이 미륵불을 친견하는 씨앗이 되는 것이다
.
* 사바세계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로써 여러 가지 번뇌를 참고 견디어 나가야만 하는 세계이며 성자들이 이곳에서 참고 교화해야 하는 세계이다.
 
⑦ 약사전 (藥師殿)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이다. 약사여래는 현세중생의 모든 재화(災禍)와 병을 없애고 고통을 구제하는 부처님이시며, 바른 법을 가르쳐 깨달음의 세계에 들게 하리라는 서원을 세워 동방정토 유리광(瑠璃光) 세계를 건설하신 분이다. 모든 중생이 약사여래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 몸이 유리처럼 청정해져서 아무 더러움이 없고 불구의 몸이 회복되고 병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가난을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은 약사전을 찾아가 기도한다.
 
약사여래부처님의 손에는 약이 든 약합, 약그릇이 들려 있다. 이 부처님은 해가 돋는 동쪽나라에 계신다고 하는데, 태양은 어둠을 물리치는 강한 힘과 발원을 나타내므로 약사여래께 기도하면 병이 낫고 기쁨과 발원 풍요가 넘치게 된다고 한다. 또한 약사여래좌우로 일광보살, 월광보살이 진리광명을 두루 비추어 중생의 모든 고통 제거를 돕고 있다. 일광보살은 연꽃을 위거나 일륜(日輪)을 가지고 있기도 하며, 월광보살은 초생달형의 달을 갖고 있거나 만월형의 월륜(月輪)을 앞가슴에 지니고 있기도 한다. 
 
⑧ 나한전 (羅漢殿)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좌우에 10대 제자 혹은 16대아라한을 모신 법당, 혹은 500 나한전도 있다. 10대 제자에 관해서는 뒤에서 상세히 언급되겠지만, 아라한이란 석존의 많은 제자들 가운데 큰 깨달음을 이루고 성위(聖威)에 오른 사람에게 붙혀진 호칭이다. 나한전 안에는 석존을 중심으로 좌우로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가 있고 그 옆으로 16명의 나한들이 앉아 있다. 이렇게 16 나한만을 모신 법당을 응진전이라고 한다. 16나한 대신 500 나한을 모신 법당은 오백나한전이라 한다. 
 
⑨ 팔상전 (八相殿)

부처님의 생멸을 팔상으로 나누어 주로 탱화로 그려서 모신 법당이다. 중앙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도솔래의, 탄생, 사문유관, 출가, 성도, 항마, 전법륜, 열반의 내용을 그리고 있다.
 
⑩ 삼성각 (三聖閣)
 
산신, 칠성(七星), 독성(獨聖)님을 모신 법당이다. 사찰에 따라 각각 따로 모시기도 하며, 큰 사찰에는 산신각 또는 산령각을 따로 큰 법당보다 뒤편에 모신다. 나반존자를 모신 법당을 독성각(獨聖閣)이라 하는데, 독성이란 스승 없이 혼자 깨달은 성자를 뜻한다. 말세 중생을 제도하시는 분으로 알려져 있다. 통도사의 나반존자상은 소나무나 구름 등을 배경 삼고 희고 긴 눈썹을 하시고 오른손에 지팡이, 왼손에는 염주나 불로초를 들고 평평한 돌 위에 반듯이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독성님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일을 다 아시고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공양을 올리고 기도하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신앙이 발달했다. 
 
산신각은 산신을 모신 집으로, 호랑이와 노인 형상을 모시거나 탱화로 모셨다. 우리 선조들은 산, 강, 하늘 등에 신령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하고 오랜 옛날부터 산신, 수신, 천신 등을 믿어온 까닭에 칠성각과 함께 민족 토착 신앙으로  불교에 포용된 것이다.
 
칠성각은 수명을 길게 해준다는 칠성님을 모신 곳인데, 칠성은 북두칠성을 신격화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칠성각에는 칠성광여래를 모시며 좌우로 일광보살, 월광보살을 모신다. 이외에 일곱명의 성스러운 별나라 임금의 탱화도 모신다.
 
우리 불교는 오랜 옛날 우리 조상들이 믿어 온 삼성신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서 사찰의 한쪽을 차지하게 했다. 일심(一心)이 청정하면 일신(一身)이 청정하고, 일신이 청정하면 다신(多身)이 청정하며 나아가 시방 중생의 원각(圓覺)이 청정해진다는 「원각경」의 말씀이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부처님의 화현이므로 업신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복을 바라고 화(禍)를 멀리하려고 한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하며 종교는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⑪ 신중단
 
불법(佛法)을 옹호하는 호법신장을 모신 단이다. 주로 탱화를 그려 모시는 데 중앙에는 동진 보안보살상을 그려 모신다.
 
 
(2) 문(門)과 교각(橋脚)
 
① 일주문 (一株門)
 
어느 사찰에 가든지 절 입구에 일주문이 있다. 일주문(一株門)이란 기둥이 하나로 건축된 문을 뜻한다. 일(一)이라는 의미는 불교에서의 우주 만유를 일심의 표현으로 본 것을 상징하며, 법계 전체를 일심의 그림자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화엄경」에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였으며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 하였고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 하는 것과 상통하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은 일심에서 일어난 현상으로 보는 것이 불교의 본질인데, 이 문을 경계로 하여 문 밖을 속계(俗界)라 한다면 안은 진계(眞界)인 것이며, 이 문을 들어설 때 일심에 귀의한다는 결심을 가지도록 하는 마음을 촉진시키는데  그 뜻이 있다.
 
② 금강문 (金剛門)
 
금강문은 가정의 대문에 해당되는 것인데, 금강문이 없는 사찰은 바로 사천왕문에 도달하기도 한다. 금강문에는 금강역사상이 있는데, 이는 사천왕과 함께 부처님의 가르침과 절을 찾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 금강역사는 코끼리의 백만배나 되는 힘과 지혜를 가지고 있고 웃옷을 벗고 허리에만 옷을 걸친 날래고 용맹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 손은 주먹을 쥐었다가 칼 또는 금강저를 들고 있다. 경주 석굴암의 금강역사상은 유명하다.
 
③ 천왕문 (天王門)
 
천왕문은 본래 밝고 깨끗해야 할 부처님 세계를 지키는 사천왕을 모신 건물로, 욕계육천의 수미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사천왕은 부처님 재세시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성스러운 법회에 잡인의 출입을 금하기 위해 사방을 수호하던 분들로, 영원한 세월에라도 불법을 수호하겠다는 굳은 맹세를 하신 부처님의 화현이다. 제각기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東(지국천왕, 비파를 들고 있슴), 西(광목천왕, 용을 잡고 있슴), 南(증장천왕, 보검을 지님), 北(다문천왕, 보탑을 받쳐 들고  있슴)에서 삼보가 계시는 사찰을 수호하는 일을 한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정신을 일깨우는데 그 뜻이 있다.
 
④ 해탈문 (解脫門)
 
불교의 지상목표는 해탈에 있는 것이다. 번뇌와 망상의 그물에서 벗어나 대자유인이 되는 것을 성불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미 일주문을 넘어 해탈문을 지나치게 될 때 벌써 해탈의 경지에 들어가게 된다는 뜻으로, 뜨거운 정진을 촉진시키는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해탈문은 욕계육천의 수미산 밑에 있는 문이라고 한다.
 
⑤ 불이문 (不二門)
 
불이(不二)란 뜻은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며 선과 악이 둘이 아니며 유와 무가 둘이 아니며 공(空)과 색(色)이 둘이 아니라는 깊고도 묘한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진리를 깨달은 세계에 들어서는 문이라는 뜻으로, 불이문은 대들보 없이 만들어져 있다. 보통 이 문을 지나면 큰법당을 만나게 되어있다. 
 
⑥ 피안교
 
피안은 범어로 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인데, 모든 번뇌에 얽매인 고통의 세계 곧 생사고해(生死苦海)를 건너 이상경(理想境)인 열반*의 언덕에 도달하기 위한 다리이다. 즉, 고통을 건넌다 또는 씻어낸다 하여 큰절의 입구에 피안교가 마련되어있다. 피안교는 욕계육천(欲界六天)의 하단부 수미산을 둘러싼 칠산팔해(七山八海)의 향수해(香水海)가 있으므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현 인간세계의 현실과 삼천대천세계에 들어가기 위하여 마음을 청정하게 씻는다는 뜻도 되고 삼천대천세계에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 

* 열반이란 멸, 적멸, 멸도라고 하기도 하는데,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진리를 궁구하여 생사를 초월하는 궁극의 경지이다. 
 
 
(3) 탑 (塔)
 
① 탑(塔)의 유래와 의의
 
탑의 유래는 부처님이 열반하시자 세존의 사리를 인도의 여덟나라에서 8등분하여 각각 자기 나라로 가져가 불탑을 세운데서 비롯된다.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진 이 탑은 불자들의 예배대상이 되어 부처님에 대한 신앙심이 굳어지면서 더 많은 탑을 세워야할 필요가 있어서 아쇼카왕이 부처님의 8만4천 법문을 의미하듯 인도 전 지역에 8만 4천개의 불탑을 세웠다고 전한다.
 
그때의 탑은 반구(半球)형으로 꼭대기에서 수직으로 구멍을 뚫어서 땅바닥에 이르게 하고 그 기둥 밑에 부처님의 사리와 유물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반둥글게 하여 탑을 많이 세웠지만 차츰 탑의 재료나 모양이 변천되어 중국에서는 진흙벽돌로 만든 전탑(塼塔), 우리나에서는 벽돌의 생산이 용이하지 못했으므로 초기에는 목탑(木塔)을 주로 세우다가 차차 돌(화강암)로 만든 석탑을 많이 세우게 되었으며, 일본은 목탑이 특별히 많이 세워지는 등 다양한 모습을 띄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특히 백제시대 때 목탑이 많이 세워졌다고 하는데, 전란으로 거의 다 소실되어 현재는 아주 귀하다. 탑은 다같이 힘을 모아 쌓아올린 공덕의 힘을 표시하며, 맑고 아름다운 도량을 장엄하는데 의의가 있다. 탑돌이는  자동남래(自東南來)라 하여 동쪽에서 남쪽으로 한다. 
 
② 사리탑과 경탑 (經塔)
 
사리(舍利)는 부처님을 다비(茶毘=화장)한 뒤에 남은 부처님 유골인데, 원래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고 그 위에 흙이나 돌을 높이 쌓아 만들었던 것이 최초의 기원이다. 사리는 여러 곳에 봉안하지만 대부분 탑 속에 봉안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사리는 영골(靈骨) 즉, 몸에서 나는 신령스런 구슬로,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잘 닦아 훈수(勳修)한 금강불괴(金剛佛壞)의 법체(法體)이다. 또한 한량없는 육바라밀의 공덕으로 생긴다고는 하나 매우 얻기 어려운 것이다.  즉, 삼악을 짓지 않고 십선을 꾸준히 수행한 진혜광(眞慧光)의 묘한 물질로서, 대단한 수양을 쌓아야 얻어지는 정신적 결정체인 것이다. 경탑(經塔)은 사리(舍利) 대신 경전을 탑 속에 넣어 모신 것이다.
 
③ 부도 (浮屠)
 
훌륭하신 스님이 열반하신 뒤에 남기신 사리를 모신 탑을 승탑(僧塔) 또는 부도(浮屠)라고 한다. 석탑이 여러 층으로 만들어진 반면, 부도는 팔각원형단층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또는 항아리처럼 생긴 부도를 세워 그 위에 보개를 얹는다.  특히 부도에는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을 들 수 있는데 목탑의 유래로 생긴 것으로 본다. 방형(方型)에는 고려때 만들어진 강원도 원주에 있는 법천사(法天寺) 지광국사 현묘탑이 있고, 복발형(覆鉢型)으로는 통도사 사리탑, 금산사 사리탑이 대표적이다. 오륜형에는 정토사 홍법국사탑이 있는데, 이것은 서울 경복궁안에 있다. 이런 부도탑들은 사원 건축물에 관계없이 사원 외각에 부도전(浮屠田)이 따로 있는 것이 특징이다.
 
 
(4) 종루 (鐘樓)
 
사물(四物)을 갖추어 놓고 조석 예불시에 치는 건물로, 보통 2층으로 되어있다.
 
① 범종 (梵鐘)
 
범종은 지옥중생을 비롯한 일체 중생을 위해 친다. 아침에는 주로 28번 치는데, 이 수는 마하 가섭에서부터 달마대사까지의 28대 조사를 의미한다고 하기도 하며, 욕계 6천(天), 색계 18천(天), 무색계 4천(天)의 합이 28이라 하여 이것을 가리킨다고도 한다. 저녁에는 33번 치는데 천상의 28계와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을 합쳐 33이 되므로 그렇다고도 하며, 33번째 천(天)이 도리천이라고 보고 그것을 의미한다는 설도 있다. 이 범종은 예불할 때, 대중을 모아야 할 필요가 있을 때, 큰스님의 열반을 알릴 때 등에 쓰인다.
 
② 법고 (法鼓)
 
법고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축생을 제도할 때 쓰인다. 법고의 북소리는 부처님의 설법에 비유되어 북소리가 울려 퍼지듯이 불법(佛法)이 삼천대천세계에 널리 퍼지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③ 운판 (雲版)
 
운판은 청동이나 쇠붙이로 되어 있고, 전체 모양이 구름같이 생겼다하여 운판이라 한다. 이것의 소리가 날짐승을 제도한다.
 
④ 목어 (木魚)
 
목어는 마치 고기모양의 나무를 속을 파고 그것을 조석 예불 때 치는 것이다. 물고기의 제도를 상징하는데 그 유래가 전한다. 옛날 어느 절에 많은 제자를 거느린 큰스님이 계셨는데, 제자 가운데 한명이 제멋대로 행동하고 나쁜 짓을 하다가 그만 병에 걸려 죽어 물고기로 환생했다. 그런데 등에 커다란 나무가 솟아나서 헤엄치기가 여간 힘드는 것이 아니었다. 스승이 배를 타다 물고기가 뱃전에 와서 슬피 우니 자신의 제자임을 알아보고 즉시 물속 생명을 위해 법회를 베푸셨다.
 
그날 밤 물고기의 몸을 벗어난 제자가 스승의 꿈에 나타나 자신의 등에 난 나무를 베어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어 소리를 내어주면 물에 사는 생명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제자의 부탁대로 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경각심을 심어준다. 알다시피 물고기는 눈을 감는 예가 없다. 그와 같이 우리 중생들도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경책의 의미가 담겨있다. 목탁은 목어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5) 당우 (堂宇)
 
① 강당 (講堂) : 설법과 강의가 이루어지는 큰 강
② 선방 (禪房) : 참선하는 곳이다. 선종에서는 가장 중요시하는 건물이다.
③ 강원 (講院) : 경전을 배우는 곳이다. 일명 승가대학을 일컫는다.
④ 요사 (寮舍) : 스님들이 거주하는 방 또는 건물이다.
⑤ 장경각 (藏經閣) : 경전을 봉안하여 둔 곳으로, 대부분 목판을 보관하는 곳 이다. 해인사 팔만대장경각이 유명하다. 
 
      
2. 불 상
 
(1) 불상의 연원 

불상의 연원에 대한 근거를 경전에서 찾아보면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권28, 「대방편불보은경(大方便佛報恩經)」권3, 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권6, 「불설대승조상공덕경(佛說大乘造像功德經)」권6 등에 나와있다. 내용인즉, 석존이 일찍 돌아가신 마야부인을 제도하기 위하여 기원정사를 떠나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으로 올라가 어머니를 예경하고 석달동안 천인들을 위해 설법하셨는데, 지상에서는 부처님 계신 곳을 몰라 소동이 일어났다. 이에 제자 아나율이 천안(天眼)으로 살펴 도리천에 계신 것을 알리니 부처님을 그리워한 코살라국의 우전왕이 불상을 만들고자 생각했다.
 
그래서 비수갈마천이 내려와 전단향으로 5척의 부처님을 탄생일에 맞추어 조성했고 우전왕은 진짜 부처님처럼 조석으로 향과 공양을 올리며 예배했다. 부처님이 대범천왕, 제석천왕, 사대천왕의 호위를 받으며 지상에 내려 오시니 만들어진 불상이 부처님께 자리를 내어 주었고, 이에 부처님께서는 불상을 보고 네가 말세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하셨다는 일화가 여러 경전에 기록되어 전한다.
 
(2) 불상의 32길상(吉相)과 80종호(種好)
 
이것은 부처님의 신체적 특징을 헤아려 나열한 것인데, 부처님의 자비하신 인격과 종교적 신비성을 무어라 표현할 수 없었던 많은 제자들은 부처님과 전륜성왕*에게만 나타나는 32상(相)과 80종호(種好)에 근거를 두고 불상을 조성했다. 32상은 큰 특징들이고, 80종호는 여든가지 작은 특징들을 가리키는데, 이는 부처님이 탄생하신 직후 아시타선인이 싯타르타 아기 부처님의 관상을 살피시고 큰 깨달음을 이루리라고 예언했던 것도 부처님의 32상 80종호에 의한 것이다.
 
이와 같이 32상은 부처님의 과거세에 수행하실 때 한가지 상을 이루기 위하여 백가지 선한 생각을 하시고 백가지 복덕을 지어서 이룬 것이다. 즉, 전생에서의 선행의 결과이며 500여회 나고 죽음으로써, 육바라밀의 보살 대행을 지켜오면서 형성된 것을 대상(大相)으로 묘사한 것이다.  여기서 32상 80종호를 다 열거하지 않고 아주 특징적인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금색상 (몸이 금색으로 된 모습)
② 족하이륜상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가 있는 모습)
③ 신장상 (키가 크신 모습) : 불신은 10척 정도로 키가 크고 언제나 뒤에 광배를 지니고 있다.
④ 장광상 (신체 주위에 일장의 빛을 발하는 모습)
⑤ 장지상 (손가락이 가늘며 긴 모습)
⑥ 정계상 (머리카락이 오른쪽으로 잘 말려져 있는 두부(頭部) 정상에는 높이 솟은 육계가 있는 모습) : 항상 미간에 백호를 넣어서 32상 80종 호를 나타낸다.
⑦ 눈은 중생을 자비롭게 살피시는 형상을 하고 계시며, 귀바퀴가 쳐진 귀 는 크게 조성되어 있고 입은 붉다.
⑧ 백모상 (눈썹 사이 흰털이 하나 있어 오른쪽으로 돌아나 있는 모습)
⑨ 대설상 (혀가 길고 혀를 빼면 얼굴 전체를 덮고 머리칼에 이르나 입 속 에 넣으면 차지 않는 모습)
⑩ 부처님 손을 펴면 손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는 것 등등 불상은 모두 32상 80종호(種好)에 근거한다.
 
* 전륜성왕이란 가장 이상적인 통치자로서, 어느 특정한 국가가 아니라 보편적 국가의 제왕을 뜻한다.
 
 
(3) 수인 (手印)
 
수인이란 불상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부처님의 손모습을 말하는데, 손모습에 따라 의미가 각각 다르다.
 
① 선정인 (禪定印)
 
부처님께서 선정에 드신 모습으로 어느 손이든 한 손을 단전에 갖다 댄 경우다. 이는 마음으로써 중생을 편안케 하며 무엇인가를 전달하는 모습이다.
 
② 설법인 (說法印)
 
손을 들고 계시면 설법인이다. 부처님의 말씀은 온갖 두려움을 없애준다고 하여 시무외인(施無畏印)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설법인을 하고 계시는 부처님을 만나게 되면 부처님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내리고 계신지를 깨달아 수행하며 기도해야 공덕을 성취할 수 있다.
 
③ 여원인 (與願印)
 
이는 다섯 손가락을 편채로 손바닥을 내 보이신 모습으로서 중생의 원하는 바를 들어주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여원인은 한 중생도 버리지 않고 온갖 방편으로 인도하시는 부처님의 한량없으신 자비를 상징한다. 따라서 불자는 자기 소원이 부처님의 원력으로 성취되는 것임을 알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올려야 한다.
 
④ 항마촉지인 (降魔觸地印)
 
손을 아래로 하고 계신 모습이다. 이는 모든 마구니를 항복받은 모습이시다. 일에는 무엇이든 마구니가 있고 마음의 번뇌가 있어 장애가 생기기 마련이다. 부처님은 삿되고 나쁜 것을 없애주신다.
 
⑤ 지권인 (智拳印)
 
왼손의 집게손가락을 오른손 주먹 속에 넣고 오른손가락과 왼손 집게손가락을 마주 잡고 있는 모양이다. 오른손은 부처님의 세계를 상징하고 왼손은 중생의 세계를 상징한다. 모든 중생이 부처님 세상에서 행복할 수 있는 비로자나불을 표상한 것이다. 이 밖에도 천지인 (탄생시 손모습), 전법륜인(轉法輪印) 등이 있다.
 
 
(4) 광배 (光背)
 
일장(一丈)의 빛이 난다고 해서 32상 중에 장관상이 있다. 원래 무량광으로 시방세계에 빈틈없이 비친다.
 
① 두광(頭光)은 백호를 중심으로 법륜형, 화염형, 연꽃형, 원형등이 있고, 바탕에 화불과 길상초와 보상화 등을 장식한다.
② 신광(身光)은 몸을 중심으로 두광과 더불어 같이 장식되어 있다.
③ 학신광(學身光)은 불신 후면에 입상이든 좌상이든 대좌에서 시작하여 머리 위까지 불신 전체를 감싼다. 단형광배(丹形光背)라고도 한다.
 
 
(5) 대좌 (臺座)
 
대좌는 부처님을 보시기 위한 한 단계 높게 만들어 놓은 자리이다. 그 형태는 대체로 우주의 중심에 있는 수미산과 같은 모양을 취하고 있다. 대좌는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에 올라서 어머니를 위해 법을 설하신 부처님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대좌는 상중하로 나뉘는데, 중대는 수미산 중턱의 좁아진 모양을 나타낸다. 상대와 하대는 사바세계의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을 생각하여 복련(覆蓮), 앙련(仰蓮)으로 장식하고 있다. 그래서 연화대라고 한다.
 
① 수미산형 좌대 : 나한상
② 연좌(蓮座) - 나뭇잎 좌대 : 나한상
③ 하엽좌(荷葉座) - 나뭇잎 좌대 : 제신항
④ 암좌(岩座) - 암석 좌대 : 사천왕
⑤ 생령좌(生靈座) - 잡신좌대(동물좌대) : 사천왕
 
 
(6) 자세
 
① 입상 : 행동, 상, 걸식 (그림벽화) - 직립형 / - 굴곡형 (통일신라시대 이후)
② 좌상 : 법당 내부 대부분 좌상 (성도, 항마, 설법)
③ 와상 : 휴식, 열반상
④ 기상(埼像) : 삼화령 법주사
⑤ 교각상(橋脚形) : 발복을 교차한 거상의 자세
⑥ 탄생상 : 천상천하유아독존 (칠보)
 
 
3. 탱화
 
불보살을 그림으로 그린 것을 불화라고 하고, 불화를 점안하여 불상뒤에 모시면 탱화가 된다. 보통 각 전(殿)마다 후불탱화가 모셔져 있다. 불화의 연대는 부처님 당시부터 있었다고 하나 그에 뒷받침할 증거는 없고, 다만 잡사(雜史)에 기록된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가 기원정사 건립후 부처님께 물어 부처님이 벽에 그릴 그림을 알려준데서 불화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또는 괘불탱화는 불상을 크게 그린 불화나 탱화를 말한다. 이것은 큰절에서 대법회때 법당앞에 걸고 법회를 봉행시 사용한다. 그밖에 조왕탱화 등 많은 불화가 있다.
 
 
4. 불교의 상징
 
(1) 만 (卍)
 
만(卍)자는 불교사원을 상징하는 표시로 이미 대중화되어있다. 만(卍)자는 만(萬)을 대신해서 쓰여진 것이기에 음역을 “만”이라고 한다. 범어로 ‘스바스티카’이며, 길상(吉祥), 유락(有樂), 덕상(德相), 행운(幸運), 경복(慶福) 등으로 그 유해를 살펴보면 비시나, 크리시나라는 신이 가슴에 달었던 것이 만(卍)자 모양과 비슷하며, 인더스 문화유물에서도 그 원형을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부처님 재세 이전에도 사람들이 숭상했던 신이나 왕은 만(卍)자를 지니고 있었고, 자이나교 계조의 가슴에도 만(卍)자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힌두교 사원에서는 천신의 재단에 만(卍)자가 쓰여져 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만(卍)은 부처님 당시 꼭 불교의 상징으로 정하여 쓴 것이 아니고, 그 이전에도 길조의 상징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러다가 불교의 전파에 따라 중국에서 만덕원만한 모양으로 부처님의 가슴에 그리며 혹은 불심인(佛心印)이라고  설명한다. 또는 부처님의 발바닥 65상 속에도 그려져 있다.
 
 
(2) 원상 (圓相)
 
원상(圓相)은 일원상(一圓相)이라 하는데 중생의 마음은 빛깔도 없고 형상도 없고 길고 짧고 넓고 좁음을 표현할 수 없으나 마음의 평등한 뜻을 표시하기 위하여 원형 하나 로 표상한 것이다. 흔히 선종(禪宗)에서 일원상을 많이 논 하는데, 이는 우주의 모든 근원이 일원상에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승(禪僧)은 이 원(圓)이 근본을 깨달아 각(覺)을 이루기 위해 정진한다.
 
 
(3) 삼보 (三寶)
 
원형 셋이 삼각을 이루고 있는 이 문양은 부처님과 부처님불 의 가르침과 승단이 각각 분리되지 않고 항상 공존한다는 의미다. 즉, 이 그림은 불법승(佛法僧) 삼보를 가리키며, 삼보란 불교 최대의 보물이라는 의미이다. 위에 불(佛)이 법 승 자리하고 법(法)과 승(僧)이 좌우로 나란히 삼각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삼보사찰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불보사찰은 금강계단이 설해져 있는 경남 양산의 영축산 통도사(通度寺)로서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금란가사(金?袈裟)가 봉안되어있다.  법보사찰은 부처님 말씀인 국보 제32호 팔만대장경을 보존하고 있는 경남 합천의 가야산 해인사(海印寺)이다. 승보사찰은 전남 승주의 조계산 송광사(松廣寺)로, 이곳은 많은 고승들이 수행한 절이며 부처님의 치아사리가 봉안되어  있고, 보조국사(普照國師)를 비롯한 16국사의 영정이 모셔져있는 곳이다.
 
 
(4) 불교기 (佛敎旗)
 
불교기는 1950년 스리랑카에서 열린 ‘세계불교도 대회’에서 정식승인되어 현제 세계불교국가의 불교단체에서 사용하고 있다. 불교기의 5색의 가로선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상징하고, 5색의 세로선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영원불멸하다는 의미를 상징한다.
 
 
(5) 법륜 (法輪)
 
법륜은 범어로 Dharmacakra(작흘라)를 음역한 것인데, 법륜 또는 윤보(輪寶)라 한다. 이는 부처님의 교법(敎法)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윤보가 산과 바위를 부수는 것과 같아서 한 사람, 한 곳에 머물지 아니하고 늘 굴러서 여러 사람에게 이르는 수레바퀴와 같이 팔정도의 수행으로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가 있다. 부처님 당시 인도에서 왕의 상징이며, 왕의 보기(寶器)로 사용했다고 한다. 전륜성왕이 전생의 복으로 법륜을 얻어 이것을 돌릴때마다 땅은 평탄해지고 산악과 암성은 부서져서 악당을 물리치게 되고 여러 민족을 통일하게 된다는 뜻이라고 한다. 불교에서의 법륜은 팔정도(八正道) 수행으로 악을 물리치고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데 쓰인다.
 
 
(6) 염주 (念珠)
 
염주는 부처님을 생각하는 구슬이다. 염주는 보통 108개를 기준으로 목에 거는데, 특별히 손목에 차는 것은 단주(短珠)이지만 통칭하여 모두 염주라 한다. 목에 걸때는 불보살님이 들어있는 모주(母珠)를 목 뒤에 오게 걸어야 하며 벽에 걸때는 모주가 위로 오도록 걸어야 한다. 염주를 돌릴때에는 모주를 돌리지 않고 통과시키는게 바람직하다.